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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를 진행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죄 없는 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맞는가. 모스의 출현은 나와의 사적인 관계에서 비롯한다. 우주적 재해를 맞선다는 명분으로 페어리와 무당벌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 결국, 모스가 오기 전에 코스모스와 함께 우주로 나왔다. 전쟁 준비로 한창이던 녀석들은 내가 떠난다 하자 붙잡으려 하기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까지 놈과 마주할 필요는 없다.” 저들이 살았으면 한다. 모스는 나를 쫓는다. 주체인 내가 사라지면 저들은 안전해지겠지.
우주관리국이라는 관측자도 있고. 페어리와 무당벌레의 잠재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여도 스킬을 습득할 수 없는 환경이어서 시간이 얼마가 주어지더라도 모스의 지느러미 끝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진궁의 말이 맞았다.

1회차와 완전히 같은 위치에 균열이 발생. 항성의 빛마저 가리는 검푸른 몸체. 놈은 감았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행성을 노려본다.
“그럴 것 없다.” 모스의 눈이 나를 향한다.
나무뿌리를 촘촘히 엮어 소인의 형상을 취한 내 모습이 붉은 동공에 담긴다. 놈의 입가가 길게 늘어진다. 회백색으로 번들거리는 송곳니가 촘촘하게 나열된 입을 열어.
브어어어-
포효.
직후, 전과 같이 머리를 아래로 내리며 위에 있던 나를 꼬리로 올려친다. 고래인 놈에게 있어 꼬리질은 삶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 사람으로 치면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한 동작만으로 나를 처리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어린아이 같은 심술이자 도발.
꼬리로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진즉에 회피 경로를 짜두었다. 그리로 이동만 하면 되는데. 꼬리의 범위가 문제. 팰리스와 깊은 걸음을 사용할 수 없기에 기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황.


레딕스 틀, 블링크. 파워볼실시간
발아래 생성한 틀을 밟아 마법을 발동, 시선이 닿은 지점으로 육체가 전송된다. 빛 알갱이가 흩어지고 다시 조합되어 해당 지점에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초로 잴 수 이 짧다. 그러나 모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나타난 방향으로 몸통박치기를 해왔다. 부메랑처럼 구부린 몸, 몸통 반대편으로 뻗어 나가는 강대한 마력. 속도는 측정할 수 없지만, 맞으면 즉사라는 건 누구라도 알 법한 위용이었다.
걸음을 걷듯 다시 한 번 레딕스 틀을 생성해 블링크. 이번에는 몸이 빛 알갱이로 전부 변환되지도 않았는데 구부렸던 몸을 피고 나의 시선이 닿은 방향을 향해 꼬리를 휘두른다.

젠장.
전송이 완성되었을 때 내 앞에는 놈의 검은 꼬리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다시 블링크를 하기에는 과정을 진행할만한 여유가 없다. 하여.
당겨. 세이프파워볼
몸이 아래로 쭈욱 떨어진다. 최초의 하강속도는 꼬리가 내려치는 속도보다 못해 얼굴이 놈의 꼬리가 생성한 풍압에 의해 갈려 나갔으나 이내 속도가 증가하여 완전히 떨쳐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범위에서 벗어났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코스모스. 미리 근방에 뻗어둔 잔뿌리를 잡고 최대속력으로 날았다. 연습한 대로 호흡이 맞아서 안심하는 것도 잠시. 놈의 입 주변에 광자가 모여든다.
분자 분해 파동포? 빌어먹을 놈. 가지가지 하는구나.
나는 코스모스를 데리고 몇 번이나 블링크를 밟았으나 모스의 고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이동하는 반경 정도는 분분포로 덮을 수 있다는 자신감.

치사하게.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놈의 눈을 노려보니, 가늘게 휘어 있다. 즐기는 게 분명하다. 지고 싶지 않아 나도 웃었다. 놈의 적안이 일순 흔들렸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입이 벌어지고, 분분포가 광속으로 쏘아졌다.
워프!
도망치는 와중에 간신히 끌어모은 마나 아크로 게이트를 열었고 그 속으로 몸을 던짐으로써 분분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군!
“괜찮다.”
-다리가…!
“기능은 상반신에 몰아뒀다.” 뿌리몸의 일부가 사라진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와라.
제발. 파워볼사이트
영겁 같은 찰나가 지나고 알림 하나가 시야의 일부를 메운다. 몸을 돌리며 재차 분분포를 준비하는 모스를 직시하며 알림을 펼쳤다.
[스킬:끈질김이 반응합니다] [정체불명의 파동포 저항력 : 0.0001%] 됐다. 이것으로 씨앗이 심겼다.
빛이 날아든다. 이전 분분포와 달리 분열하는 빛줄기는 호밍미사일처럼 추격해왔고 심지어 굴절까지 되더니 기어코 나를 이루는 핵인 메인 뿌리와 덩굴꽃을 태웠다.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모스의 내리깐 눈이 보인다.
기뻐해도 좋다, 모스.
머지않은 미래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마.

*
2회차 15년, 어느 날 밤.
[신성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신성은 당신에게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신성이 당신에게…] “잠깐.”


[이름 없는 신성은 당신의 또렷한 의사전달에 놀랍니다.] [당신의 혼에서 생의 궤적을 열람한 이름 없는 신성이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나와 모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신성은 곤란하다는 의지를 전달한 후 내게 의사를 물었다.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축복은 없습니까?” 불가하다는 답이 왔다. 그런 힘을 부여하기 위해선 상당한 양의 성력이 필요한데, 성력은 진즉에 우주관리국에서 강탈해갔다고. 그러면 페어리와 무당벌레를 신자로 삼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신성은 부정적인 의견을 비쳤다.
[이름 없는 신성은 자신은 다시 신앙을 모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슬피 호소합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능력을 말하겠습니다. 이 중 가능한 게 있다면 짚어주십시오.” 전투에 도움이 되는 많은 특성과 스킬들을 나열했다.
“…조건 무효, 중력, 심계, 절대적인 관통, 완벽한 보호, 장거리 이동, 불굴, 세계선, 끈질김 강화.” [이름 없는 신성이 어깨를 들썩입니다.] “끈질김 강화가 가능합니까?” [이름 없는 신성이 부정의 의지를 표합니다.] “세계선?”
[무명의 신성은 다중 세계선을 동시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자찬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자찬이 아니라 사실이라 주장합니다.] [하나의 세계선이 폭주하며 다른 세계선에 영향을 받아 이 상황까지 왔다고 합니다.] “관리국의 행패가 아니었습니까?” [검열되었습니다.] [검열되었습니다.] [검열되었습니다.] 이해했다. 세이프파워볼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신성에게 이전과는 다른 축복을 부여받았고 그것이 후에 홀로 전투를 벌이기로 한 계기가 되었다.
*

3회차.
영상을 생략하기가 무섭게 알림이 어지러이 날아들었다.
[축복:세계선 운영이 조건을 만족합니다.] [다른 세계선의 기록이 현 세계선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등록된 세계선 : 2] [끈질김이 반응합니다.] [저항]
[앰버 가스 저항력 : MAX] [폴 오일 저항력 : MA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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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불명의 바람 저항력 : 0.0001%] [정체불명의 파동포 저항력 : 0.0001%] [적응]
[레드 메뉴얼 적응력 : MAX] [어포틱 밸런스 적응력 : MAX] ·
·
·
[메타모프 블루 적응력 : MAX] 이름 없는 신성은 신성의 자격과 혼, 얼마 남지 않은 수명 그 모든 것을 팔아 이 스크롤에 한정해 지속되는 조건부 축복을 내게 부여했다. 스크롤의 최하단에 두 번째 추가 조건이 생겼고 거기엔 무명 신성의 축복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좋아.
이전에 플레이했던 두 세계선의 끈질김 수치가 계승되었다.
당장 지표로 올라가서 활동해도 되겠어. 가장 고통스럽고 지난한 기간을 생략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신 피로가 쌓이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세계선이 쌓일수록 승리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모스가 행하는 모든 행위를 저항하는 것도 가능해. …지금은 너무 아득해서 그렇지. 에너지를 확보해 돌아다니기 좋은 뿌리몸의 형태를 취하고 마나 아크를 확보하기 위해 땅고기를 대량으로 번식시켰다. 어차피 이번 회차는 나만 활동할 예정이었기에 농도의 문제는 괘념치 않았다. 행성 질량의 일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땅고기의 숫자를 늘리자, 마나 아크가 성층권을 넘어 우주로 흘러나갔다. 세이프게임
나는 다른 행성에도, 나아가 항성계 전체가 마나 아크로 가득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다른 행성까지 가야 한다. 알다시피 우주는 넓다. 심계 미탐험지에서 활동해본 경험상, 직접 움직인다는 가정을 하면 평생 날아도 항성계를 가로지르긴 어려울 것이다. 빛마저 하나의 항성계를 빠져나가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 않던가.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좌표.”
한 번만 좌표를 기록해두면 다음엔 바로 해당 행성으로 이동이 가능. 나는 최대한 땅고기들이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두고 플레이 시작 3년째에 우주로 나섰다. 에코 에어리어로 전신을 보호하고 덩굴꽃으로 광합성을 하며 워프를 반복. 내가 강제로 끌고 온 마나가 동났을 무렵, 다시 모행성으로 돌아가고자 게이트를 열려는 때에 시야에 물고기처럼 생긴 별자리가 들어왔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도 생선이 사는데, 우주라고 안 될까. 시간은 많다. 나는 어떻게든 우주에서도 마나를 뿜는 개체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약 3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해냈다. 워낙 이것저것 섞어대서 그런지 물고기의 형태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팔랑


끝이 돌돌 말린 기다린 더듬이 두 개, 은보랏빛의 날개 두 장 그리고 투명한 몸통. 나비였다. 그것은 내가 제공하는 덩굴꽃의 꿀과 과육을 주식으로 하였고 우주환경에도 끄떡없이 버틴다. 마나 생성량은 땅고기의 수 배에 달하고 몸집은 훨씬 작다.
우주활동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다. 나비들이 생성하는 마나를 믿고 게이트 마법을 펑펑 써댔다. 그 덕에 모스가 도착하기 전, 항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행성에 땅고기와 나비를 퍼트릴 수 있었다.
결전의 날.
브어어- 로투스홀짝
모스가 등장하고. 일련의 꼬리, 몸통, 꼬리, 분분포로 이어지는 패턴을 가볍게 회피한 다음. 놈의 연속된 분분포 사용으로 차지가 느려진 때를 노려 항성계 전역에 심어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마나 아크의 속성을 최대로 이용한 마법이자 레딕스 마탑 탑주의 이름을 온 우주에 각인시킨 마법.
“아케인 번.”
첫 번째 마법진은 행성 인근의 마나를 빨아들여 아케인 번 마법을 구성하고.
“게이트.”
두 번째 마법진은 이곳과 마법진을 설치해둔 행성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연결. 아케인 번은 어떤 에너지 소실도 시간적 소모도 없이 분분포를 토하기 위해 광자를 모으던 모스의 주둥이 안으로 처박혔다. 일련의 폭발과 함께 모스의 몸뚱이가 흔들린다. 입가의 광자가 사라진 것으로 승기가 넘어왔다고 확신하는 때에, 하나의 빛줄기가 날아갔고 일순, 우주가 밝아졌다.
빛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도넛이 된 항성이 보였다. 인지함과 동시에 그 방향으로 빨려들었고…, 어둠이 내렸다.
[플레이에 실패하셨습니다.] 와…, 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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