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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기 사단 (4)
무릎 하나 고쳤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손창민이었다.
처음에는 나사 하나 풀린 것처럼 생글거리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손창민의 본성은 느슨함과 거리가 멀었다. 천성적으로 그런 인간이었다면 전성기 시절에 그 엄청난 혹사를 감내하지도 않았겠지.
“대가에 관해 말씀드리기 전에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제 치유능력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무릎을 아예 새로 만들어준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 “관절, 인대, 연골이야 고칠 수 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 치료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력 회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진단에 손창민은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창민은 몸뚱이만 걸레짝처럼 망가진 게 아니었다. 실은 마력 회로도 다소 망가진 상태였다. 노후화로 출력이 미세하게 떨어진 모터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마도 이 또한 혹사의 영향이겠지.
이것만큼은 내가 완전히 고칠 수 없었다. 세이프파워볼
마력 회로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솔직히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기관이기 때문이었다. 마력 자체가 각성자의 심상으로 발현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남이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마력만큼은 최전성기로 복구하기 힘들 겁니다. 아마 90~95퍼센트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사실상 완쾌라는 소리긴 했다.

손창민은 전성기 기준으로 S급 중에서도 꽤 치는 편이었다. 한국에 S급 자체가 몇 없으므로 비교 대상이 드물긴 하지만, 인접국의 S급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쯤 되니까 영웅 대접을 받은 거겠지.’ 지금은 마력 용적이 줄어든 탓에 최전성기로 돌아가긴 힘들겠지만, 못해도 평균적인 S급의 수준까지는 회복할 수 있을 터다. 그것만으로도 헌터업계가 뒤집힐 만한 이슈로 취급받을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손창민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련한 표정으로 제 병실을 둘러보기도 했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완치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게 4년 전이에요.” 포기하기 전에는 어떻게든 현장으로 돌아가려고 수술대에 스무 번 넘게 올라갔고, 외국의 실력 있는 힐러한테 들이댄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치료에 쏟아부은 비용만 수백억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건 누더기 같은 몸뚱이뿐이었다고 했다.

“고관절을 고치고 나면 무릎에서 탈이 나고, 무릎을 고치고 나면 발목이 망가져 있었어요. 근육으로라도 버티려고 억지로 재활 운동을 하다 보니 근융해증이라는 희한한 병까지 걸렸구요.” “병원에 사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희망이 없어서?” “···예.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 만나기가 힘들더군요.” 이런 사연이 있으니 나를 구세주처럼 쳐다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회한에 가득 찬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물기가 차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전에 도장부터 찍기로 했다.
“손창민 헌터.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선의로 치료해드린 건 아닙니다.” “아, 당연히 대가는.” “혹시 돈으로 지불하실 겁니까? 다른 곳에서 손창민 헌터의 무릎에 쏟아부은 마력의 절반만 사용해도 100억은 너끈히 벌 수 있을 겁니다.” 손창민은 “100억까진 없는데.”라고 중얼거리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환자복 옷깃을 연신 쥐었다 놓는 모습을 보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청구서를 들이댈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안심하세요.” 파워볼사이트


돈으로 갚으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는 그에게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노예계약서 같은 건 아니었다. 웬만한 헌터 길드에서 표준양식처럼 활용하는 평범한 계약서에 지나지 않았다.
12년짜리 장기계약도 아니었고(애초에 12년 동안 활동하지도 못하겠지만), 부당한 수익 분배 조건으로 그를 착취할 생각도 없었다. 계약금이 따로 없어서 그렇지 그럭저럭 평범한 조건이었다.
다만 그 행선지가 내 소유의 길드일 뿐이었다.
“제주도로 내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손창민 헌터.” “제주도요···?”


내가 제주도와 합작으로 출범한 대원 길드.
대원 길드는 이미 본격적인 게이트 토벌에 들어간 상태였다. 최근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출현한 C급, B급 게이트를 차례로 토벌하면서 지역사회에 착실하게 뿌리내리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누구한테 찬사받을 정도로 엄청난 실적을 낸 건 아니었다.
다만 로컬 길드의 특장점은 이미 증명하고 있었다. 게이트 출현 이후 3시간 이내에 토벌에 나설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과시한 것이다. 제주도에서 마련해준 전용 버스를 타고 달려가 곧바로 들어가는 식이라고 했다.
이건 웬만한 길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터들이 24시간 내내 출동대기 상태로 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원 길드는 가능했다. 애초에 스포츠팀 수준의 일사불란함을 자랑하는 것이 그들이었다. 평시에도 합숙 형태로 함께 지내고 토벌에 나설 때마다 꼬박꼬박 10명씩 투입하는 애들이기도 했다.
그 각 잡힌 모습이 제주도민에게 인상적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 친구 조상규는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의 프리랜서 헌터 일곱 명을 이미 제 식구로 끌어안았고, 제주도 지역신문 기자를 홍보담당자로 영입했다고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현지의 여론도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B급 중형 14시간 만에 깼던데? 실력은 걱정할 필요 없을 듯] [볍신이냐? 10명씩 우르르 들어갔는데 당연히 빨리 깨야지. 솔직히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건 마음에 안 듬.] [10명이서 가든 5명이서 가든 우리가 상관할 것 있나? 하필 우리 엄마 식당 근처에 출현한 게이트라 엄청 걱정했는데 빨리 없애줘서 고맙더라. 교통 통제령 진짜 개 같은데.] 헌터한테 이 정도 평가면 극찬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대원 길드의 지역 밀착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했다. 앞으로 제주도에 출현할 모든 게이트는 대원 길드의 몫이니까. 매일 똑같은 얼굴을 접하다 보면 친근하게 느낄 수밖에.
식당에서 밥 공짜로 대접받는 수준의 인기를 끌기는 힘들겠지만,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사장님들한테 사인을 요구받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역에서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대원 길드의 전력 자체는 여전히 중견 길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B급 대형까지는 무난한 토벌을 자신할 수 있지만, A급 소형부터는 성공적인 토벌을 장담하기 힘든 그런 애매한 길드. 인력은 스무 명까지 늘어났지만 그중 대부분은 B급이었다.
물론 조상규 본인은 핀란드식 방법론 어쩌구 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아직 실적으로 입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지성으로 믿어주고 싶지만 게이트 토벌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런 대원 길드의 전력을 단기간에 키울 생각이었다.
일단 첫 타자인 손창민을 가담시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중견 길드의 수준은 아득하게 넘어설 수 있었다. S급 헌터 한 명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특히 손창민의 전투 스타일을 고려하면 어설픈 A급 예닐곱 명 가담시키는 것보다 더 나았다. 4대 대형 길드까지는 몰라도 검성이 이끄는 호남의 무학 길드와는 그럭저럭 비견할 수 있는 길드로 부상할 터.
헌터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다. 계획대로만 풀린다면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이 바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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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6년 동안 대원 길드 소속으로 활동하는 조건입니다.” “제주도에 길드가 있는 줄 몰랐네요. 로컬 길드라구요?” “말 그대로 지역에 정착해서 활동하는 길듭니다. 제주도에 등장하는 모든 게이트를 담당하고 있죠. 명목상으로는 제가 대표를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조상규라는 친구가 하고 있습니다.” “······.”
“미리 밝히자면 조상규는 제 친굽니다. 대원 길드의 대주주도 접니다. 철저하게 제 영향권 아래서 활동하게 된다고 보면 됩니다.” “제주도, 좋긴 한데.” 손창민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입맛을 다셨다.
“오늘 해드린 치료는 계약 성사를 위한 사례금 정도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이어질 치료는 실질적인 계약금으로 간주하시면 되겠구요.” 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치료는 힘들다는 간접적인 통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나미 떨어지는 제안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추종하는 의료인이 아니었다. 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피 같은 마력을 녹여가면서 치료해줄 수 없었다.
다행히 손창민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말끔해진 제 무릎과 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연 그였다.
“할게요.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조건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휴가 정도야 넉넉히 보장할 수 있지. 혹시 쾌적한 주거를 원한다면 제주시 구도심에 있는 주상복합에서 살게 해줄 의향도 있었다. S급을 장기계약으로 묶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
“···그게, 말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후웁. 손창민은 한두 번 심호흡하면서 망설이다가 마침내 토로했다.
“1년에 최소한 50억 정도는 맞춰 주셔야 합니다.” “······?”
이게 무슨 소리야. 애초에 연봉제가 아닌데. 물론 수익 분배야 해야겠지만 손창민이 1년에 50억을 못 가져갈 일은 절대 없었다. 내가 그의 몸을 일부러 덜 고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제가 돈독이 올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솔직히 50억이 아니라 그 반의반만 받아도 응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길드의 평판이 오히려 나빠질 거예요.” “그, 손창민 헌터? 물가 감각이 좀.” “아뇨. 정 뭣하면 권윤기··· 부회장님이라고 하셨나요? 부회장님이 지정하는 곳에 차액만큼 기부라도 하죠.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연봉을 맞춰 주셔야 해요.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올 테니까.” 어려운 제안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는 손창민이었다. 본인의 주머니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악덕 고용주 취급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보아하니 손창민 이 친구는 요즘 S급 헌터들이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헌터 관련 뉴스를 일부러 외면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완벽하게 차단하고 살아온 수준이었다.
‘현실감각이야 천천히 되찾으면 되겠지.’ 나는 손창민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창민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곧바로 계약에 응했다. 계약서 세부조항 따위는 아예 읽어볼 생각도 없는 듯했다.


“빠른 결정 고맙습니다. 마저 고칩시다.” 나는 운동치료실을 빌려서 남은 부위도 곧바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일단 30분을 투자해서 고관절을 고쳐냈다.
손창민은 8년 만에 처음으로 고관절이 제대로 기능한다면서 탄성을 뱉었다. 이 무렵부터는 요양병원 의료진과 환자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부러운 듯 연신 탄성을 뱉으면서.
고관절을 고치고 나니 오후였다. 손창민과 나란히 앉아서 병원식으로 식사를 해결한 뒤 오른쪽 무릎과 척추, 어깨를 차례로 고쳐냈다. 이번에는 40분쯤 걸렸고, 마무리하고 나자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서 포박 치료를 가했다. 자잘한 부상을 한 번에 고쳐내기 위해서였다.
손창민은 치료를 받는 내내 맥락 없는 하소연을 쏟아내더니 결국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병원도 때려 부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갑자기 완력을 자랑하는 건 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치료가 끝나는 순간. 세이프파워볼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손창민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겠는지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팔뚝을 말없이 두들겨주었다. S급 헌터 한 명을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치료 과정은 영상으로 남긴 상태였다. 손창민한테 60억 받아먹고서 치료에 실패했다는 부탄의 아무개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뉴스를 도배할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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