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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채점을 해 보자.” 플라워즈의 토요일 강의. 원래 정해진 강의 시간은 2시간이지만 1시간 20분 만에 목표 한 진도를 전부 나가 버렸다.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쪽지 시험까지 봤건만, 그래도 20분이 남았다.
“예린이 92점! 아주 잘했다. 다른 멤버들도 전부 80점 후반대. 정말로 많이 늘었는데?” 칭찬받은 예린과 멤버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지……. 진도 다 나가고 예정에 없던 시험까지 봤는데 시간이 남다니.” 정동과 플라워즈는 방학을 이용해서 선행 학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번 해외 순회 공연 때 정동이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준 나머지, 이제는 배울 게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2학기 기말고사 범위를 배우자니, 그건 너무 진도가 빠르고. 이걸 어쩐다…….” 게다가 만들어 온 학습 자료들도 전부 써 버려서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자습을 시킬 수도 없었다.
세상에 학생을 자습시키는 과외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정동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 팀의 막내인 루시가 의견을 냈다.
“쌤. 그럼 우리 YZ 투어 하실래요? 마침 토요일이라 연습하러 온 연예인들이 많을 거예요! 운이 좋다면 탕탕소년단이나 성중기 같은 잘생긴 남자 연예인도…….” 다른 멤버들에게 루시의 의견은 썩 괜찮게 들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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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목적이 정동에게 YZ를 구경시켜 주는 것인지, 혹여나 있을지 모를 훈남 연예인들을 만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만 믿어요, 정 쌤. 제가 책임지고 구석구석 구경시켜 드릴게요.” “맞아요! 어차피 시간 남아서 할 것도 없는데. 이번에는 저희가 정 쌤을 가르쳐 드리는 거죠!” 멤버들의 강력한 설득으로 결국 정동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야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너희들 말대로 하자. 그 대신에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분명히 이대로 나가면 멤버들에게 휩쓸려 다녀야 할 것이다.
일단 정동은 1명이고, 플라워즈는 6명이니까.
게다가 혹여나 사고라도 벌어지면 전부 정동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구민 매니저님과 동행할 것!” “아아! 정 쌤!!” YZ 투어라는 핑계를 대며 남자 아이돌들의 연습실에 몰래 찾아갈 계획이었던 플라워즈는 울상이 되었다.
“후후후. 쌤은 구민을 소환하고 턴을 종료하마. 그럼, 가 볼까? 안내해라, 예린!” “네에에…….”
강의실 밖에서 연락을 받은 구민과 만난 뒤, 본격적인 YZ 투어가 시작되었다.
멤버들은 처음에는 계획이 틀어진 나머지 의욕이라곤 없었지만, YZ에서 강의만 했던 정동이 시설을 돌아보며 신기해하고 이것저것을 물어보자 금세 활기를 되찾고 정동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물론, 남자 아이돌의 연습실이나 대기실 진입은 구민이 완벽하게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정 쌤, 여기가 바로 우리 YZ의 자랑인 녹음실이에요.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까 한번 들어가 볼까요?” 앞장서고 있던 예린은 3층에 위치한 녹음실의 문을 열었고, 그 순간 정동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엔트리파워볼
“우와아……. 무슨 내 키 2배만 한 스피커가 벽면에 쫙 깔려 있냐. 장비 장난 아닌데? 게다가 넓이도 강의실만 하고.” 이곳 녹음실은 YZ에서 가장 공을 들인 곳이었다.

하나에 몇 억을 호가하는 스피커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한쪽에는 차음률 98%를 자랑하는 초대형 방음 부스까지 있었다.
“그런데 사실 녹음을 하는 데는 이 정도의 장비까지는 필요 없거든요. 그래서 이 방은 방송용으로 써요.” “방송용?”
“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걸 촬영할 때 여기서 많이들 하죠. 녹음실치고 큰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익숙하게 YZ를 드나들던 정동이었지만 알고 보니 신기한 곳이 참 많았다.
녹음실 이외에도 스테이지라든가 아직 철거하지 않은 촬영 부스 같은 것도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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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장 좋은 점은 따로 있었다.
“앗! 쌤, 잠시만요.”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정동과 구민, 그리고 플라워즈 멤버들의 앞에 15년 차 방송인인 류해진이 나타난 것이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쪼르르 달려가서 열 맞춰 인사하는 멤버들.
“허허허. 그래, 고맙다.” 조금 부담스러워할 법도 하건만 류해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갔다.
플라워즈는 어디서든 선배 연예인이 나타나면 먼저 달려가 인사했다.
구민이 설명하길, 연예계는 군대보다 위계질서가 더 엄격하단다. 선배 연예인에게 한번 제대로 찍혔다가 광고까지 날아간 케이스도 있다니 말 다 했다.
“쌤, 여기가 이제 YZ의 마지막 층이에요. 여긴 사무실 위주라 볼 게 그리 많지는 않은데…….” 재미있었던 YZ 투어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복도에서 덥수룩한 수염의 아저씨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를 발견한 구민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인사했다.

매니저들에게 PD란 우선적으로 잘 보여야 할 존재였다.
당연히 자신의 연예인들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나 PD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걸그룹 플라워즈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정구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맥과 학연이 판치는 PD계에서 나 PD는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웃기거나 자극적인 흥미를 끄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대리 만족시켜 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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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여행을 다닌다든가, 산골에서 집을 짓고 산다든가 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왔던 일을 대신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2박 3일>이나 <유한도전>처럼 버라이어티 예능만이 존재하던 방송계에 그가 미친 파장은 실로 놀라웠다. 로투스홀짝
구민의 인사를 받은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플라워즈라면……. 저번에 지능돌, 공부하는 아이돌이라면서 확 뜬 그 걸그룹이지? 아아, 이거 아쉬워. 플라워즈가 공인만 아니었으면 가져다 썼을 텐데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가져다 쓴다는 말에 구민의 귀가 쫑긋거렸다.
“공인만 아니면, 이라니요……. 혹시 이번에 새로 제작 중이신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사실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시도를 해 볼 생각이거든. 연예인은 한두 명만 넣고, 나머지 자리를 어떠한 분야의 권위자들로 채우는 거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국내를 여행하며 퀴즈, 토크쇼를 하는 거야. 그런데 고민이라니까. 촬영일이 바로 다음 주인데 사람이 없어! 소설가랑 연구원은 찾았는데, 강사를 못 구하고 있어. 교사나 강사 하나만 딱 들어오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에리가 나섰다.
너무 훅 치고 들어와서 미처 구민이 말릴 새도 없었다.
“어, 그럼 이분은 어때요? 오늘 YZ에 견학을 오신 강사님이신데……. 저번에 고1 학생이 <도전! 수학벨>에서 우승한 적이 있었죠? 그 학생을 가르친 강사가 이분이에요. 그리고 아, 맞다. 보셨을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SNS 돌아다니던 강의 영상 있잖아요. 왜, 구세계 백화점에서 한 거요. 그것도 우리 정 쌔……. 읍읍.” 예상 밖의 행동에 넋을 놓은 나머지, 정동이 에리를 막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흥분한 에리가 ‘정 쌤’이라는 말을 꺼낼 뻔했다.
정동은 에리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에리! 너 쌤의 존재는 극비인 거 몰라? 그걸 이렇게 대놓고 말하면!” 그러나 에리의 입을 틀어막은 정동의 손은 갑자기 달려든 나 PD에 게 잡혔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이전과는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방금 이 아이가 말한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윈스턴 원장에 비견할 만한 강렬한 카리스마에 압도된 정동은 무심코 말해 버렸다.
“네……. 그런데요……?” 그러자 나 PD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강사님이 바로 여기에 있었군요! 처음 보는 순간 필이 딱 왔습니다. 아, 이 사람이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제가 새로 준비 중인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제목은 <알쓸쉰잡>이고요. 강사님, 저와 함께하시죠! 출연료도 책임지고 최대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는 흥분한 것인지 속사포처럼 빠르게 떠들어 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하려는 일을 알 수 있었다.
예린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기획사 안에서 즉석 캐스팅이 이루어진 거네…….”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그저 필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캐스팅해 버린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정동은 겨우 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 세이프게임
“제, 제가……. 생각을 좀 해 보고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그 대신 오늘 안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촬영이 바로 다음 주라서요.” 엄청난 크기의 폭탄을 던져 놓고, 나 PD는 유유히 떠나갔다.
“기다리겠습니다. 강사님!” 결국, YZ 투어는 그렇게 끝나고야 말았다.


“으아아…….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진짜…….” 붕붕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정동은 다짜고짜 침대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캐스팅이라니.
그것도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나 PD의 신작이란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번 해 보고 싶기는 한데……. 하지만 지금 어디 여행을 가서 촬영을 할 시간이……. 아니, 애초에 내가 촬영장에 설 수나 있을까? 아까 PD님 말씀 들어 보니까 유명한 연예인도 나온다던데.” 정동은 그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이 쉬이 나오지가 않았다.
해 보고 싶기야 하지만 너무 부담이 되는데다가 시간이 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결국, 정동의 고민은 해가 떨어지고 주영과 쇼핑을 나갔던 수아가 귀가하여 2층의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히이이이익! 수아 씨, 이게 무슨……!” 본능적으로 수아임을 직감하고 현관문을 연 정동은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는 소리 질렀다.
수아가 가슴골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고 있던 탓이었다.
게다가 하의도 평소 즐겨 입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가 아닌 쫙 달라붙는 핫팬츠 차림이었다. 세이프파워볼
수아처럼 가슴이 큰 사람이 이런 복장을 하자, 파괴력은 상당했다.
“왜 그리 놀라요? 이거 주영 씨가 골라 준 옷이에요. 역시 여름에는 시원하게 입어야 한다면서. 아, 물론 저도 주영 씨 옷을 골라 줬죠. 뭔지 궁금해요?” 정동은 질색을 했다. 당장이라도 코피가 나올 것 같았다.
“아뇨! 전혀요! 내가 주영 씨, 이 여자를 그냥!!” “그냥 새로 산 옷 구경이나 시켜 드릴까 해서 와 봤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정동은 내려가려는 수아를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섭섭했다.
“그럼……. 올라온 김에 나 좀 도와줘요.” “네? 무슨 일인데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도와야죠.” “그게 사실…….”
정동은 아까 있었던 일

“제 친구 중에 YZ에서 매니저를 하는 녀석이 하나 있거든요. 아까 그 녀석이 오라고 그래서 잠깐 다녀왔는데, 글쎄…… 실시간파워볼 .”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수아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동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정동 씨, 바보예요? 이런 기회가 어디 인생에 두 번 오는 줄 아냐고요. 무조건 나가야죠!” 그러고는 정동의 손에 들려 있던 명함을 빼앗아 나 PD의 번호를 휴대폰에 찍은 뒤, 전화를 걸어 정동에게 돌려줬다.
자고로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다음 주 토요일 오전.
정동은 서울역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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